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제리 전쟁 (문단 편집) == 일화 == * 프랑스가 알제리를 통합하려고 시도하던 독립 전쟁 전의 알제리 초등학교에서는 프랑스 본토와 같은 교과서를 사용했다. 그 역사 교과서의 첫 문장은 '''"[[내선일체|우리의 조상인 갈리아인들]]은...(후략)"'''으로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알제리인은 [[갈리아#s-2|갈리아인]]과 혈통상으로 전혀 상관 없다. * [[이방인(소설)|이방인]]으로 유명한 문인 [[알베르 카뮈]]는 알제리 출신 [[피에 누아르]]로서 프랑스-스페인 혼혈이었다. 알베르 카뮈는 프랑스 좌파 지식인으로서는 드물게 알제리의 독립에 반대하였다. 그는 독립보다는 프랑스 내에서의 자치권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나 프랑스 좌우익 및 알제리 독립진영 모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프랑스 좌파 지식인들에게서 [[왕따]] 취급당했는데 카뮈는 그에 개의치 않긴 했다. 알제리인들에게 카뮈는 침략자의 상징이 되어 지금은 알제리에 가면 그가 살던 집들은 부서지거나 재공사 후 사람들이 새로 들어가 살면서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더불어 알제리에서 그의 이름은 아예 모르는 이름이다. 카뮈가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서 세워진 그의 문학 기념비는 남아 있지만 카뮈의 이름을 누군가가 부숴 놓아서 누굴 위하여 만든 건지도 모르게 되었다. 당연히 관리도 되지 않아서 금이 가 있고 한동안 누군가가 신나게 두들겨패서인지 낡아 있다. *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는 [[이브 생 로랑|이브 생로랑]] 역시 프랑스령 알제리의 제2의 도시인 오랑에서 출생한 후 살아온 [[피에 누아르]]다. 그는 1960년 알제리 전쟁 당시 육군에 징집되어 전쟁에 투입되었으나 평소 소극적이고 여성스러운 성격이었던 그는 군대의 강압적인 분위기와 잔혹한 전쟁의 분위기를 이기지 못해 20일만에 정신병이 발병했고 다행히 파리에 있는 군병원으로 후송되어 더 이상 전쟁에 휘말리지 않게 되었다. * [[응우옌 왕조|베트남]]의 황제인 [[함응이 황제|함응이]]는 살아 생전 [[독립운동]] 혐의로 [[프랑스]]에 의해 강제로 퇴위당한 후 [[알제리]]로 유배 온 후 평생 그림을 그렸는데 그 그림의 대부분이 이 전쟁으로 인해 소실되었다. 그래도 [[https://64.media.tumblr.com/98ce09b362b3fa7a866d4f3776e0c8ae/47da4653cdfa8562-c7/s2048x3072/0ebf91105c8ad81763c993952176f0fad80f8833.jpg|일부]]는 그 와중에도 소실되지 않고 현재까지 남아 있다. *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는지라 알제리 국민혁명군은 온갖 잡다한 무기를 다 사용했다. 1958년에 외국인 기자가 방문해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독일제 81mm 박격포(대대당 1~2문), 독일제 MG42 기관총, 영국제 브렌 기관총, 미국제 57mm 무반동총, 영국제 리엔필드 소총, 이집트가 제공한 마우저 소총, 미국제 개런드 소총, 프랑스제 MAS 소총, 독일제 대전차지뢰, 영국제 또는 프랑스제 C3 폭약, 영국제 수통, 미국제 탄띠 등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